• 대통령 사과의 기술, "변명을 담는다면 자칫…"

    대통령 사과의 기술, "변명을 담는다면 자칫…"



    장고를 거듭한 윤석열 대통령이 KBS와의 대담을 통해 새해 국정구상을 밝히고 논란이 된 여러 이슈들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대담은 4일 사전 녹화로 진행된 뒤 7일 TV로 방송될 예정이다.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의 계획을 설명하고 국민적 이해와 지지를 요청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래도  국민의 눈과 귀가 모아지는 이슈는 따로 있다. 바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이다.
     
    함정 취재의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민은 거의 없다. 앞으로도 유사한 사례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영상으로 남은 대통령 부인의 명품백 수수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전자는 전자대로 평가돼야 하고, 후자는 후자대로 평가돼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김건희 여사 또는 대통령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유감을 표명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가, 메시지의 강도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참모들까지 고심에 고심을 이어갔다고 한다. 사과든 유감이든 입장을 밝히되 나름의 억울함을 내세울지 여부가 고민의 핵심이리라. 어떻게 고개를 숙이느냐에 따라 위기 상황을 종결하고 다시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쥘 수도 있고, 정치적 비판을 자초해 리더십이 더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고가 이어지면서 대통령의 신년 회견 자체가 미뤄졌고 총선을 앞둔 국정 동력까지 약화되는 상황이다. 이날(4일) 대담에 나서기로 한 것은 어떻게든 내부 결론을 냈다는 것인데, 대담에 앞서 아래의 연구 결과도 참고할 만하다.
     
    필자와 광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김상연 교수가 함께 발표한 논문(김정훈, 김상연. 2018)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 있었던 42건의 사과 사례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는 사과에 나선 대통령이 변명을 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따라 언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분석했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을지라도 언론사의 반응이 국민의 감정을 어느 정도 대표함을 전제로 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국정원 증거 조작과 세월호 침몰 참사 등으로 사과하면서 그 원인을 공직사회의 적폐(積弊)로 돌리기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동산 대책의 실패를 자인하면서도 경기 악화 지적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변명했다. 측근 비리를 두고 사과하면서 ‘할 말이 없습니다’, ‘그건 전적으로 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언급하며 별다른 변명을 덧붙이지 않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례도 있다.
     
    결과는 예상하는 대로다. 변명을 담지 않아야 부정적 반응이 덜했다. 온전한 사과와 반성의 메시지를 깔끔하게 담아야 그 취지를 십분 살릴 수 있었다. 변명이나 자기 정당화는 또 다른 빌미가 될 뿐이며 정치적 위기 상황을 종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국민들이 방송을 통해 듣고 싶은 건, ‘몰카 공작 경위’나 ‘명품백을 건넨 이와의 인연’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반성의 메시지일 것이다.
     
    흔쾌히 이를 결정하기란 쉽지는 않을 터다. 자칫 대통령 내외가 체통을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할 수 있다. 그 주관적 염려를 떨칠 수 있는 대통령의 용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한 참모들의 조언도 있어야 마땅하다. 대통령의 위기 수사학을 연구한 또다른 논문(이귀혜. 2007)은 “진솔한 사과 표현은 굴욕감수라기보다, 잃었던 대통령의 에토스를 회복하고 청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파토스의 기능을 하며, 이를 통해 대통령을 실질적으로 임무로부터 사면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고 말한다. 대통령이 진심 어린 자세로 흔쾌히 고개를 숙임으로써, 이제라도 대한민국이 ‘명품백 수수 논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논문
    김정훈 김상연. (2018). 대통령 공식사과 중 변명 유무에 따른 언론사 반응. 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48), 5-35.
    이귀혜. (2007). 한국 대통령들의 위기 수사학에 관한 연구. 한국언론학보, 51(6), 6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