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끝작렬]’사법농단’ 실체는 사라지고 개인의 일탈이라는 법원

    [뒤끝작렬]’사법농단’ 실체는 사라지고 개인의 일탈이라는 법원


    연합뉴스
    11 대 3


    야구와 같은 스포츠 경기 ‘스코어’가 아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재판을 받은 전·현직 판사 14명에 대한 1심 이후 유·무죄 결과다. 무죄는 11명, 유죄가 3명이다.

    무죄를 받은 이들 가운데는 의혹의 정점으로 꼽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포함됐다.

    무죄 선고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무죄 선고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는 지난달 26일 이들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일부 혐의가 직권남용에 해당하더라도 ‘윗선’인 양 전 대법원장이나 이들 대법관까지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부 재판에 대해서는 개입을 인정하면서도 “재판에 관여할 ‘일반적 직무권한’이 존재하지 않으니 남용도 불가하다”고 봤다. 부적절한 재판 개입이지만, 권한이 없으니 남용도 없다는 결론이다.

    해당 재판부는 임 전 차장 사건을 직접 심리하지는 않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이 직권을 남용해 심의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런 결론에도 양 전 대법원장과의 연결고리는 찾을 수 없다며 공모 관계를 부정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직후 재판부를 향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너무 엄격히, 좁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법원의 오류를 애써 모른 척한 ‘제식구 감싸기’의 결정판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또한 ‘대법원장의 지시와 승인 없이 이런 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의문의 해답을 열흘 뒤 열린 임 전 차장 1심 선고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연합뉴스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는 지난 5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재항고 이유서 작성 지시를 비롯한 10여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임 전 차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사법농단 의혹의 ‘실체’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수사 초기 언론을 통해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던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에 관한 중대한 의혹들은 수많은 검사가 투입돼 수사가 이뤄지고 300쪽 넘는 공소사실로 정리되는 동안 대부분 실체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대신 “공소장에는 ‘재판거래 등을 실현하기 위해 심의관들에게 부적절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취지의 직권남용 혐의만 주로 남았다”고 설명했다. 양승태 사법부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아닌 개인이 직권을 남용한 일탈이라는 취지다.

    유죄로 인정된 범행들도 “대부분 임 전 차장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들이거나 예산에 관한 범행들에 지나지 않다”고 못 박았다. 이번 사태 책임이 임 전 차장에게 있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앞선 재판부 판단 논리와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국가가 부여한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국회의원이나 청와대를 위한 목적에 이를 이용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에 이은 사법행정 서열 3위 인물이다. 고위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넘버 3’가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하고 이를 개인 판단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대법원장의 지시와 승인 없이,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보고나 논의 없이, 차장 개인이 이런 행위를 할 수 있을지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이 항소한다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법농단 의혹은 실무 책임자들의 개인 일탈이라는 하급심 판단의 흐름이 바뀔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개인이 저질렀다”는 법원 판단에 누가 쉽게 손을 들어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