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_1]
영화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시민 덕희(라미란)가 중국으로 날아가 범죄조직 총책을 잡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6년 세탁소를 운영하던 40대 주부 김성자 씨가 보이스피싱으로 3200만 원을 잃은 뒤 조직원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총책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야기를 영화로 재구성했다.
김 씨는 조직원과 연락하며 조직 총책의 인적 사항과 사기 피해자 명단 등과 같은 핵심 정보를 받아 경찰에 전달했고, 이를 통해 실제로 검거까지 이뤄졌다. 김 씨는 신고 후 경찰이 미온적으로 대응하기에 직접 정보를 모았다고 한다. 영화는 실화에 상상력을 보태 덕희가 보이스피싱 조직이 있는 중국 칭다오까지 날아가서 잠복하고, 범죄 조직 주소를 찾고, 감시하는 것으로 나온다.
모티브가 된 실화 자체가 흥미로워서 영화화하기 쉬운 소재처럼 보이지만 범죄물에서 완력을 쓰지 않는 4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초점을 맞춘다는 게 만만한 조건이 아니다. 여기 덕희는 범죄도시 마석도 같은 주먹이 없고, 복수의 화신 존 윅 같은 총잡이도 아니다. 그렇다고 두뇌 싸움을 할 만한 캐릭터도 아니다. 영화 제목에 시민이 들어간 것도, 내세울 게 시민이라는 것뿐이라 별 능력이 없다는 의미다. 덕희가 보이스피싱을 당한 사실을 알고 난 뒤 사기 친 조직원 재민(공명)과의 통화에서 시원하게 욕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가만 안 둔다고 하면 진짜 곧 상대를 으스러트릴 것 같은 마동석과 달리 덕희는 그 장면이 너무도 무력하기만 하다.
그러나 영화는 무너진 삶과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발버둥으로도 기어이 극을 끌고 간다. 영화 속 덕희는 욕 잘하고 막무가내일 뿐이어서 범죄조직 주소를 하나하나씩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씩 찾아가는 동안 실마리를 찾는 느낌을 받게 된다. 덕희가 아등바등하며 피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직접 조직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는 동안 느낄 수 있다. 자존감은 평범한 사람들의 초능력이라는 것을.
영화는 자기 삶을 회복하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밝히는 데 집중한다. 그렇게 삶의 존엄과 자존감의 문제를 전방 배치하면서, 범죄 피해자가 갖고 있을 것만 같은 속성에서 벗어난다. 그러면서 사기와는 무관한 개인적인 신파에 갇히지 않는다. 덕희는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엄마로 그려지지만, 영화는 거기에 어떤 이유나 배경이 있는지를 다루지 않는다. 그런 사연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 삶의 회복 그 자체가 중요할 뿐이므로, 사기로 말미암아 벌어진 사달과 피해만을 다룰 뿐이다. 이는 ‘나쁜 놈 잡는 데 이유 없다’는 범죄도시의 교훈과도 절묘하게 포개진다.
중국에 가면서 연차를 쓸 고민, 한국에 돌아와서는 쉬느니 일해야 한다고 말할 때 덕희는 꿋꿋하게 평범하다. 그리고 평범하다는 건 존엄성을 지키면서 산다는 의미다. 바보 같아서 사기당했다는 피해자 비난에도 절박한 삶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되묻는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칭다오의 보이스피싱 조직에 갇혀서 부득이하게 범죄에 조력하는 재민이다. 재민 역시 맞지 않고, 욕먹지 않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 역시 자존을 지키는 삶을 우선시한다. 평범한 삶을 지켜주기 위해서 발벗고 나선 게 공권력이 아니라, 사기 피해를 입은 덕희라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개인사를 덜어내고 범죄 피해와 가해에 대해서만 다루는 영화는 한결 가볍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범죄 피해로 무너지는 덕희를 비추다가, 재민의 연락을 받고 직접 범죄조직을 잡겠다고 마음먹는 장면까지 숨 가쁘게 펼쳐진다. 16부작 드라마를 3부부터 보는 것 같은 빠른 호흡이다. 이 점이 관객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 잔인한 묘사를 가져오는 점은 호불호가 갈린다. 특히 완력으로 범죄조직을 만류할 힘이 없는 덕희는 몸을 내던지는데, 여기서의 폭력이 과하다는 평이 있다.
다만 영화 모티브가 된 실화 속에선 범죄 피해자 중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현실이 영화 속 폭력만큼이나 잔혹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 씨가 돈을 앞세운 총책의 합의 권유를 물리친 것도 목숨을 끊은 피해자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잔혹한 세상에도 누군가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있다. 그건 이 세상이 초능력이 있는 영웅들의 세상보다 나은 점이다.
임현석 DX본부 전략팀 기자 lhs@donga.com
[ad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