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당 탄압에 저항한 김대중의 5시간19분 필리버스터

    야당 탄압에 저항한 김대중의 5시간19분 필리버스터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페이스북 갈무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이 누적 관객 11만 명을 동원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독재 정권에 맞선 그의 70년 정치 인생의 단골 이미지 중 하나는 명연설가이자 웅변가다. 국가의 통치 철학과 국제 관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아낸 다양한 연설문과 웅변은 지금도 복기되고 회자된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룬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책 ‘연설의 정석’은 제6대 국회 제41회 19차 본회의가 열린 1964년 4월 20일의 임시국회에서 당시 민주당 소속 초선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이 야당인 자유민주당 소속 김준연 의원원의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벌인 대한민국 최초의 필리버스터 연설문과 속기록을 담고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지시를 받은 공화당은 김 의원 구속동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구속시킬 계획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김 전 대통령의 5시간 19분 필리버스터로 구속동의안 상정을 지연시키는 데 성공한다.

    책은 의회 안에서 다수파의 독주 등을 막기 위해 합법적 수단으로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는 무제한 토론인 필리버스터를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최초로 시도한 김 전 대통령의 속기록 연설문을 통해 그의 정치 인생을 관통해온 국가 운영 철학과 원칙, 정책과 이상을 담아낸 정치 연설의 근본이 ‘설득의 요체’임을 설명하고자 한다.

    당시 정부가 회기 만료 하루를 앞두고 ‘국회의원(김준연) 체포 동의 요구의 건’을 국회에 제출하고 당일 이를 가결하려고 시도했다. 야권 정당들은 합동 의원총회를 열고 의사 진행 변경 발언으로 시간을 끌어 김 대표에 대한 회기 중 구속을 면케 하자고 의결하고, 이미 달변가이자 대중 연설가로 명성이 자자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국회 최초의 필리버스터 임무를 맡긴다.

    연단에 오른 김 전 대통령은 필리버스터에 임하며 “야당으로서의 최후의 발악, 생존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민사 제공 학민사 제공 
    민주화 이후 국회에서 여러 차례, 주목을 끈 장시간의 필리버스터가 있었지만 정치적 설득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치중해 국민적 공감을 얻은 연설은 비교적 적다는 지적도 있다. 이 책은 오후 2시 37분에 시작해 저녁 7시 56분에 끝난 장장 5시간 19분에 걸친 김 전 대통령의 필리버스터 연설에 대해 ‘연설의 전설’이자 ‘연설의 정석’이었다고 평가한다.

    김 전 대통령의 연설은 사건의 근원적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내 그 책임이 집권 정부 여당에 있음을 지적하고, 국회의원 하나하나는 헌법기관으로서 국민을 대변하기에 존중되어야 하며 삼권분립의 정신에 따른 의회민주주의 정당성을 역설했다고 꼽았다.

    연설은 인권의 보호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구속 동의 대상자인 김 의원의 일본제국주의 하의 독립운동 투신과 투옥, 정부 수립에 공헌, 민주주의 확립에 대한 기여 등을 열거하며 수차례 구속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역지사지의 사례를 들어 집권 세력을 이해하고 다독이면서 대승적 결단을 촉구했다. 장면 정권하의 소급입법을 반성하면서 군사정부의 정치정화법을 비판하되 모든 사안을 역지사지의 시각에서 협의해 함께 국가발전을 이뤄 나가자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행정부와 의회, 여당과 야당이 국가발전의 공동운명체임을 설득하는 한편, 정부 여당의 독선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지적했다. 당시 학생시위가 격화하는 사오항에서 야당을 배려하지 않고 집권세력이 독선으로 치닫는다면 파국이 올 것을 엄중하게 경고했다.


    책은 이 연설문을 통해 웅변가이자 연설자의 태도와 지식, 연설의 방법, 사안에 따른 연설의 방식 등 웅변술 요령과 ‘학교의 학도를 권면하는 연설’ 등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여러 연설 예문도 수록했다.

    야권 지도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문집을 여러 권 펴낸 김학민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이 주석과 해제를 붙였다.

    김대중 연설·김학민 풀이 | 학민사 |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