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양교사는 죄인 취급”…’교권 사각지대’ 영양교사들의 눈물

    “영양교사는 죄인 취급”…’교권 사각지대’ 영양교사들의 눈물


    스마트이미지 제공
    “학부모 민원은 곧바로 영양교사한테 전달되고, 영양교사가 알아서 (민원을) 혼자 해결해야 해요. 영양교사는 한 학교에 한 명밖에 없으니까 교과 선생님들 민원 문제가 공론화됐을 때 저희(영양교사)는 무척 소외감을 느꼈어요”
     


    영양교사 한진아(45)씨는 “학교에서 정한 ‘학부모 민원 대응 매뉴얼’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억울하다는 듯한 말투로 답했다.

    그는 “영양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성적을 주지 않아서 부모들이 (영양교사를) 쉽게 보는 것 같다”며 “전교생을 대상으로 급식을 시행하는 우리에게 학부모 전체가 민원인인 셈”이라고 분노했다.
     
    15년 차 영양교사 장모씨는 영양교사로 갓 부임했을 때, 학교 측과 급식실에서 함께 일하는 조리실무사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장씨는 “영양교사가 ‘레시피를 잘 따라야 한다’고 지도해도 조리원들이 자기 마음대로 일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그러다) 조리실무사의 실수로 급식에 이물질이 들어가더라도 영양교사가 직접 원인을 밝혀내고,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사과하고, 대책까지 세워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모든 과정에서 영양교사는 죄인 취급을 당한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삼아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급식실을 담당하는 영양교사들은 여전히 ‘교권 사각지대’에 갇혀 있었다.
     
    대한영양사협회 전국영양교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영양교사 100명 중 84명 꼴로 교권 침해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양교사들은 대표적인 교권 침해 사례로 학생·학부모, 학교장 등으로부터 ‘식단이나 식생활 지도 방법을 간섭했다’, ‘폭언이나 욕설을 들었다’ 등을 꼽았다.

    지난 달 29일에는 서울 양천구에 있는 한 중학교 영양교사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원인이 아직 명확치 않은 가운데 교원단체 등은 해당 교사가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던 정황이 의심된다며 ‘학부모 갑질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 
    실제로 급식실에서 억울한 일이 일어나도 영양교사들이 교육청이나 학교장에게 불만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학교마다 주로 영양교사를 한 명만 채용하다 보니 함께 불만을 제기할 동료 교사가 없고,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교과 담당 교사들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씨는 “일반 교사들도 마찬가지지만, 영양교사는 이른 아침부터 나와서 식자재를 검수하고, 조리를 바로 들어간다”며 “점심시간에 교사들끼리는 교류도 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만, 저희는 점심시간에 일해야 하니까 그분들과 교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씨는 “이런 문제들은 구조적 문제이다보니 학교 관리자들도 문제를 쉽사리 해결할 수 없다”며 “그렇다고 학교에 영양교사가 딱 한 명 있는데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것도 어렵다”고 씁쓸해했다.
     
    더구나 학교와 단기 계약을 맺어 불만이 생기면 차라리 손쉽게 직장을 옮길 수라도 있는 조리실무사, 영양사 등과 달리 영양교사들은 아무리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더라도 적어도 2년간은 배정받은 학교에서 일해야 한다. 즉, 영양교사들이 악성 민원을 겪더라도 다음 발령 때까지 고충을 견뎌내야 하는 셈이다.
     


    인천에서 영양교사로 일하는 오세영씨는 “조리실무사들은 학교 인사고충위원회 결과에 따라 다른 학교를 갈 수 있지만, 영양교사가 그렇게 학교를 옮겼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며 “하지만 다른 학교를 가도 상황은 똑같으니까 (직장을 옮기는 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영양교사의 열악한 처우에 대해 교육 당국이 안일하게 접근해 학부모 민원 등에 시달리는 문제를 키웠다고 비판한다.
     
    교육부는 오는 3월부터 교육지원청마다 ‘민원 전담 대응팀’이 신설돼 교사들이 겪는 ‘민원 고충’이 해소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이마저도 영양교사들에게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관계자는 “지역교육청 같은 경우에는 영양교사로 일해본 사람이 한 명도 근무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교육청이 영양교사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며 “관리자들부터 급식실 업무에 대해 잘 모르니까 ‘영양교사가 알아서 해’ 하는 경향이 있다. (식생활 지도도) 교육 활동의 하나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교사노조 황수진 정책실장은 “교육부에서 민원 대응 시스템을 만들고 있지만 여전히 학교장이 교사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며 “학부모 민원을 제대로 응대하려면 학교장이 중간 차단막 역할을 해줘야 한다. 학교장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