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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마다 우리 수묵화를 보고 놀라워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한국화가 홀대받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2년에 걸쳐 해외 순회전을 열고 돌아온 소산(小山) 박대성(79)의 소회다. 박대성은 2022년부터 해외 기관 8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독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의 한국문화원 초대전에 이어 미국 서부 LA카운티미술관(LACMA)과 동부 하버드대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 후드미술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찰스왕센터, 메리워싱턴대를 순회했다.
LACMA에서 한국 작가 초대전이 열린 건 처음이다. 공간을 압도하는 대형 산수화를 중심으로 8작품을 출품했는데 전시기간을 당초 일정보다 두 달 연장했을 정도로 관람객의 반응이 좋았다. 소품 위주로 전시한 서부의 대학 미술관에서는 심포지엄과 강연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논의하고 한국화 작가의 첫 영문 연구 도록을 발간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박대성은 “수묵화가 옛날 것이고 고리타분하다고 폄하하는 우리와 달리 해외에서는 새로운 것을 보는 것처럼 굉장히 놀라워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한국화라는 것 자체가 없어졌다. 초중고 교과서에서 동양화, 수묵화를 다루지 않고 대학교에서도 유지가 안 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우리 고유의 것을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작가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 아래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국화를 현대화했다. 존스톰버그 후드미술관 관장은 “박대성의 필법, 소재, 재료는 전통적이지만 색채 사용, 작품 크기와 구성은 현대적”이라고 평했다.
“전통 미술과 현대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건 작가가 오랫동안 동서양 미술을 모두 섭렵하며 조형실험을 거듭해 온 덕이다.
박대성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고 한국전쟁 때 한 쪽 팔을 잃었지만 1969년부터 1978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8번 입선했고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1988~1989년 중국 화문 기행에서 중국 전통 회화를 혁신한 이가염으로부터 “먹과 서예를 중시하라”는 조언을 듣고 서예를 공부했다.
1994년에는 뉴욕으로 건너가 1년간 머물렀다. 서양 현대 미술을 배우면서 ‘한국의 수묵화를 현대화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995년 귀국한 작가는 경주에 정착해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2일 가나아트센터에서 해외 순회 기념전 ‘소산비경’이 개막했다. 해외 순회전 출품작과 신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출품작들은 다양한 기법을 쓴 점이 눈에 띈다.
‘현율’은 원근법을 무시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의 부감법을 사용해 금강산 기암절벽 1만 개가 연출하는 장관을 표현했다. ‘신라몽유도’는 경주의 대표적인 유적들을 비례가 맞지 않을 정도로 큰 크기로 강조했고 남산의 모습을 단순화했다.
‘삼릉비경’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보이는 뜰을 그렸다. 밝은 보름달이 석탑과 뜰 곳곳을 비추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7년 만에 눈이 내린 경주 불국사의 고즈넉한 새벽 풍경을 담은 ‘불국설경’, 소복이 쌓인 눈이 정겨운 ‘경복궁 돌담길’이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설경을 그린 작품은 물감을 전혀 쓰지 않았다. “작가는 안 그리고 그려야 해요. 그것이 미술의 ‘술'(術)이죠. 많은 시련을 겪고 연습해야 눈을 안 그려도 눈이 그려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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